결국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 정일영
2026-09-14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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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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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8년간 유학한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교수가 되기를 꿈꿨지만 번번이 임용에서 미끄러졌다. 그렇게 30년을 시간강사로 살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글을 썼고,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다. 노력했지만 매번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우울과 공황장애까지 겪었다. 이번 생에는 교수 임용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실패의 아이콘에 가까웠다. 불평과 불만은 어느새 삶의 디폴트값이 되어 있었다. 늘 불안했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같은 뻔한 위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예순셋의 나이에 우연히 출연한 유튜브 <침착맨>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어쩌면 인생에 한 번쯤은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여러 매체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광고 모델로 발탁되는 기회도 얻었다. 그렇게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모교 인하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임용됐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인생 후반부에 뜻밖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의 에세이에는 바로 그 30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변방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살아온, 조금은 찌질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포기하지 마라. 꿈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식의 성공담이 아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삶이 움직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패와 좌절로 가득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 이 책은 대놓고 위로하거나 용기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조금 생긴다. 몇 번 실패했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 것. 때로는 안 되는 일을 남 탓해도 괜찮을 것. 그렇게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결국 삶은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남 탓'은 무조건 세상을 원망하라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봤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때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라는 뜻이다.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적어도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고 후회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몇 번 실패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안 되면 남 탓 좀 하시라.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78쪽)
어쩌면 그가 갑자기 스타가 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30년 동안 쌓아온 내공이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던 시간이 있었다. 결과를 알 수 없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온 끈기의 나날들이 있었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정일영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가 툭툭 건네는 말들이 유난히 깊이 와닿는다.
작가는 자신의 실수와 치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위해 평생 준비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투박한 말들 사이에서 인생의 참 묘미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텨온 시간은 언젠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삶에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빨리 인생의 결말을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고들 한다. 어쩌면 9회말 투아웃에 만루홈런을 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도 끝까지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러보자. 아직 다음 장면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