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도서관 / 인자
2026-03-18조회 8
- 작성자
-
김은미
- 이메일
-
도서관 책에서 빳빳한 지폐가... 책 한 권이 만들어낸 특별 이벤트
인자 작가의 <삶은 도서관>을 읽고
경기 히든 작가로 선정되면서 에세이 작가로 세상과 새롭게 마주하게 된 인자 작가의 책 <삶은 도서관>은 내 이름과 저자 사인이 담긴 채로 내 손안에 안착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했고 20년간 광고, 홍보 전문가로 일하던 작가는 마흔 중반에 도서관 공무직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도서관을 둘러싼 풍경들, 침묵 속에 가두기엔 너무나 생생히 펄떡이는 도서관의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더 나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서들, 그리고 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되어주는 수많은 이용자의 발걸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삶은 도서관'이라는 따뜻한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고요해야 할 것만 같은 도서관 서가 뒤편의 시끌벅적한 이야기, 이용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은밀하고 내밀한 사서들의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애틋한 인간의 드라마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가 풀어낸 이야기들은 내가 30년 가까이 사서로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과 매우 흡사했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달랐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의외로 시끄러운 도서관의 하루
지금은 자료실 데스크에서 직접 이용자들과 대면하는 일은 드물지만, 어느 시절에는 자료실 내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면서 틈틈이 이용자들이 들고 오는 책을 대출해 주곤 했다. 무인대출 반납기라는 아주 편리하지만 조금은 건조한 기계가 자료실 한편을 자리 잡기 전의 일이다. 단골 이용자들의 독서 취향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막 사서가 된 후 매일매일 좌충우돌하며 견디고 버텼던 시간들, 동시에 많은 감동과 감사의 시간을 흡수했던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작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도서관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어쩌면 젊은이들처럼 빠르게 업무처리를 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리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나는 도서관에서 매일 깨닫는다. (6쪽)"라고 말한다. 이십 대에 사서가 된 후 오십이 넘은 나이까지 도서관인으로 살아온 나는 이 나이쯤 되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가 이름 붙인 '프라이드 에이징'이라는 멋진 감각을 통해서도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늙어간다는 것은 표정만으로 마음을 읽고, 감탄사 하나로 한 사람의 생을 어림하는 진짜 초능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이 듦이 선물한 이 놀라운 감각에 '프라이드 에이징(Pride Aging)'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늙음을 부정하는 대신, 자기 존재를 존중하며 깊어질 용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6쪽)
도서관 안에서는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발생된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수만 권의 책을 하나하나 다 훑어야 할 때도 있다. 주소를 잘못 찾아간 책 덕분에 사서는 하루 종일 청구기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가 책장 사이에 꽂아 두고 간 네잎클로버가 불쑥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미처 전하지 못한 다정한 편지가 빼꼼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간혹 몰래 숨겨두었던 빳빳한 지폐가 근엄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질서 안에서 잠시 이탈한 책 한 권이 만들어낸 특별한 이벤트다.
도서관의 하루는 완벽한 질서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궤도를 이탈한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 도서관의 진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삶도 그렇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들은 정해진 자리보다 잠시 길을 잃은 순간에 피어난다. (31쪽)
대부분의 책은 정해진 대출 기간 내에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조심스럽지만 다정한 마음으로 반납 독촉을 하기도 한다. ‘제발! 부디! 꼭’!이라는 뜨거운 부사에 담긴 '책이 무사히 도서관 책장으로 돌아오기 바라는 간절함'을 이용자들이 읽어주기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한 달, 두 달, 그리고 일 년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책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속상하다.
도서관 책을 내 책인 듯 줄 긋고, 접고, 오염시킨 후 반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 책을 발견하게 되면 사서들은 펄쩍 뛸 수밖에 없다. 사서들만의 공간에서만큼은 시끄러운 도서관이 된다. 페이지마다 자신의 흔적을 꼭 남기고 싶다면, 출판계의 번창을 위해서라도 제발 새 책을 구입해서 읽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사서로서의 바람이다.
이용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마음
'사서' 중에는 '이렇게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일에 진심인 사서들이 있다. 우리 도서관 사무실과 자료실의 사서들이다. 그들에게서는 기발하고 섬세한 아이디어들이 매일 샘솟는다. 절대 마르지 않는 우물 같다.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또 신선한 물이 가득 차오른다. 이용자들도 그 변화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누군가의 작은 노력과 정성이 이용자들을 웃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의 쉼 없는 움직임이다. 깻잎 한 장 한 장을 정성껏 떼어 상대방의 밥숟가락 위에 가만히 올려주는 사람이 우리 동네 사서라면, 도서관 가는 길은 행복 그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깻잎 장아찌로 비유하자면, 나는 한 장씩 떼어주기 귀찮아서 그냥 내가 두 장 먹고 마는 사람이다. 하지만 K는 한 장 한 장 정성껏 떼어, 상대방의 따뜻한 밥숟가락 위에 가만히 올려주는 사람이다. (153쪽)
사서가 도서관 이용자들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건, 사서가 이용자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준다면 그들은 절대로 도서관을 배신하지 않는다.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하는 일도, 책을 훼손하고 슬쩍 두고 가는 일도 없다. 사서가 제안하는 프로그램에 고민 없이 참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서관 밖에서 만났을 때 뛰어가 인사를 전하는 사람도 따뜻한 목소리로 이름이 불린 적 있는 이들이다. 무인대출 반납기에 밀려 이용자들과 사서가 직접 대면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지난번 빌려 가신 책은 재미있으셨어요?"
"얼마 전에 이용자분이 좋아하실 만한 책이 신간으로 들어왔는데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너무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아프셨던 건 아니시죠?"
변화를 기억해 준다는 것, 취향을 기억해 준다는 것,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게 도서관 온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이에 동의하면서 무인대출 반납기의 편리함에 끈질기게 항거하는 사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출대에 놓인 책 목록을 통해 개개인의 인생 서사를 엿보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달하는 '마음 대출 전문 사서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대출되셨습니다. 대출 기간은 2주입니다."
나의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같다. 다만 AI 상담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책과 함께 내 마음 한 조각을 함께 대출해 드린다는 것이다. 당신이 빌려 가는 책들이 부디 그대의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잠시 후진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너무 많이 뒤처지지 않도록 작은 위로가 되기를.(123쪽)
이용자들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의 표현. 그것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내가 무인 대출 반납 기계와는 다르다는 작지만 끈질긴 항거와도 같다. 무인 기계는 결코 기억해 줄 수 없는 그들의 작은 변화를 기억하고, 안부를 묻고 싶다. 나는 그것이 도서관이 이용자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대출, 즉 '미음의 대출'이라 믿는다.(167쪽)
책의 숲을 거닐며
종이책의 보고인 도서관에서도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건 필수 불가결이다. 우리 도서관 역시 밀리의 서재, 윌라, 부커스 등의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전자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지나친 강박일 수 있지만 종이의 질감을 좋아하는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의 쾌감이 주는 기쁨을 포기할 수가 없다. 또한 서가 사이를 브라우징하며 돌아다니는 행위도 매우 즐긴다.
어느 날 우연히 나에게 발견된 한 권의 책이 어쩌면 나로 인해 다시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고 믿어서다. 그러나 요즘은 느긋하게 책 숲을 거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자료실에 들어오면 바로 검색대로 달려가 청구 번호를 확인한 후 책을 찾아 무인대출기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책 숲을 거닐다 나를 강하게 끌어당겨 발길을 멈추게 하는 책을 발견한 후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꺼내보고, 펼쳐보고, 들고 가는 쓰리 콤보가 자료실 내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오래 머물면서, 그저 서가에 꽂힌 책을 만지고, 넘겨보고, 느끼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책의 숲을 거닐며,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듯 책의 등을 오래 오래 바라보았으면 좋겠다.(142쪽)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기어코 살아남기 위해, 혹자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고 한다. '버티려는 자와 떠나려는 자, 그들의 뜨거운 들숨과 날숨으로 가득 찬 도서관은 그래서 늘 바깥 온도보다 높다(251쪽)'고 한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도서관의 온도가 조금씩 더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 대출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도서관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기 바란다. 그리고 왜 삶과 도서관이 맞닿아 있는지 그 이유를 이 책 <삶은 도서관>을 빌려 읽음으로써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자 작가가 이 책을 씀으로써 증명하고 싶었던 것, '도서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도서관에 직접 들어와서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아주 사소하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