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양귀자
2025-12-22조회 24
| 2025년을 보내는 당신께, 소설 ‘덕후’가 추천하는 책 양귀자 작가의 <희망>을 읽고 |
| 최근 양귀자 작가의 대표 소설 <모순>을 재독했다. <모순>을 통해 같은 책을 읽어도 상황과 시기와 경험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뒤늦게 양귀자 작가의 전작 읽기에 돌입했다. 1990년대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작품 활동이 뜸한 양귀자 작가의 신작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598페이지에 달하는 <희망>을 읽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중에서도 꽤 두꺼운 분량에 속하는 소설이다. <희망>은 최초에 <잘 가라 밤이여>라는 제목으로 초판 출간되었다가 2판부터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변경되어 출간되었다. '잘 가라 밤이여'의 은유에서 벗어나 명료하게 '희망'으로 가고 싶다는 작가의 뜻을 반영했다고 한다. <희망>은 현재 5판까지 출간된 스테디셀러 소설이다. 감탄을 금치 못한 표현 소설 <희망>은 서울의 어느 허름한 여관인 나성 여관 막내아들이며 대학 진학을 포기한 삼수생 '우연'이 화자가 되어 서술되는 소설이다. 나성 여관에는 돈밖에 모르는 어머니, 무기력하고 무능한 아버지,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먼 누나, 학생 운동을 하는 형과 함께 살고 있다. 가족들 외에도 9호실에 살고 있는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는 40대 노동자 찌르레기 아저씨,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며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손자 민구를 맡아 기르는 10호실의 노인, 나성 여관의 부엌일을 맡아하고 있는 뽕짝 아줌마가 나성 여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연'의 가족과 나성 여관 투숙객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참하고 불행한 듯 보인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든 한 줄기 빛이라도 발견하고 싶은 갈구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회환과 상처와 절망마저도 양귀자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활달하고 서슴 없는 문체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면서 읽었다. '우연'이 의지하고 사랑하던 누나가 몇 줄의 메모만 남겨 놓고 집을 나간 뒤 허탈한 심정을 표현한 아래의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헉!' 하는 탄식을 자아냈다. "모두 내가 몸을 기댈까 봐 미리 뾰족한 바늘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니, 어떻게 이토록 적확한 표현을 할 수가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적막했다. 집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어 쓸쓸하기만 했다. 잠시라도 마음을 의지할 대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모두 내가 몸을 기댈까 봐 미리 뾰족한 바늘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78쪽) 우리 역시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이 어떤 의미였는지 깊이 생각하곤 한다. 찌르레기 아저씨가 우연에게 "네가 누나를 사랑한 것은 곧 너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겠지. 우리가 모두 그렇다. 너는 사랑을 준 만큼 사랑 받고 싶었겠지만 인간 정신의 무게는 각각 다르다"(196쪽)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고집에서 깨어나라고 조언한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비슷한 무게의 보상을 바라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토록 거칠고 무심하고 독선적인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는 아버지조차도 자식에 대한 마음의 깊이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행간을 통해 뚜렷하게 감각하며 여러 번 숙연해졌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며 집을 나간 딸, 학생 운동을 하다가 결국 살인미수로 옥에 갇히게 된 아들을 생각하며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약해지는 '우연' 부모의 모습을 보며 부모가 가슴에 품고 있는 동굴의 깊이는 감히 누구도 섣불리 추측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상심이나 애통함에 비하면 적어도 내 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라는 존재가 가슴속에 얼마나 깊은 동굴을 지니고 있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억세고 질길 뿐 감정 이입에는 철저하게 무능하다 여겼던 어머니는 봄을 탄다는 구실로 딸에 대한 혼란을 숨긴 채 눈에 띄게 약해졌다(190쪽) 소설의 말미에 오면, 도시 재개발로 허물어질 예정인 나성 여관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겨우겨우 삶을 지탱했던 사람들에게 나성 여관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나성 여관이라는 공간이 결코 불행의 근거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현재에도 나성 여관처럼 낡은 방 안에서 작은 희망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나성 여관'이라는 공간은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나성 여관은 허물어지지만 그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누나나 형, 그리고 내가 나성 여관에 품고 있는 사람을. 그것은 때로 누추했고 더러는 끔찍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오밀조밀했고 아늑했었다. 우리들의 사랑 속에 담긴 분노와 증오와 슬픔 없이 어찌 이처럼 질긴 애정의 끈을 묶어낼 수 있었으리.(571쪽) 희망과 절망의 절묘한 교차 소설을 읽는 내내 심장이 아팠다. 별거 아닌 것처럼 써 내려간 듯 보이는 문장들이 가슴에 와서 콕콕 박혔다. 반면에 짠 내가 나는 듯하다가 이내 설탕물을 들이킨 것 같이 달콤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물들 한 명 한 명에게 연민과 애정이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해졌다가 부풀어 오르곤 했다. 희망과 절망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짜인 씨줄 날줄을 따라가다가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층위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옳을지 고민하게 했고 나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보게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내가 추구해야 할 바른 삶은 무엇일지, 혹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로를 변경해야 하지 않을지, 내가 저지른 혹은 저지르게 될 실수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사유하며 무수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쨌든 결국에는 희망이 보이는 쪽으로 향해야 할 텐데,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또 끊임없이 고민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 하게 될 것 같다. 2025년을 보내며, <희망>이라는 잘 짜인 소설을 통해 내가 바라는 미래는 과연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며 새해를 맞이해도 좋을 것 같다. 삶을 지탱해 나갈 마음가짐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544쪽) 소설 속 주인공 우연은 "감정은 와글 와글 들끓어도 절제하여 내놓는 문장은 차갑고 건조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의 첫 번째 신조였다.(441쪽)"라고 말했는데, 언어의 마술사 양귀자 작가의 글이 바로 이와 같다. 우리가 모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양귀자 작가의 글은 격조 있고 품격 있다. 양귀자 작가의 책을 단 두 권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모순'과 '희망'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희망>은 머리로 베고 자도 될 정도로 두꺼운 벽돌 책이니까 포기하지 않을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2025년이 가기 전에 양귀자 작가가 처음으로 펴낸 장편소설 <희망>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올해 100권 이상의 소설을 읽은, '소설 덕후'가 자신 있게 추천하니 한 번 믿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