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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양귀자

2025-12-22조회 172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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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보내는 당신께, 소설 ‘덕후’가 추천하는 책
양귀자 작가의 <희망>을 읽고



최근 양귀자 작가의 대표 소설 <모순>을 재독했다. <모순>을 통해 같은 책을 읽어도 상황과 시기와 경험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뒤늦게 양귀자 작가의 전작 읽기에 돌입했다. 1990년대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작품 활동이 뜸한 양귀자 작가의 신작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598페이지에 달하는 <희망>을 읽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중에서도 꽤 두꺼운 분량에 속하는 소설이다. <희망>은 최초에 <잘 가라 밤이여>라는 제목으로 초판 출간되었다가 2판부터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변경되어 출간되었다. '잘 가라 밤이여'의 은유에서 벗어나 명료하게 '희망'으로 가고 싶다는 작가의 뜻을 반영했다고 한다. <희망>은 현재 5판까지 출간된 스테디셀러 소설이다.
 
감탄을 금치 못한 표현
 
소설 <희망>은 서울의 어느 허름한 여관인 나성 여관 막내아들이며 대학 진학을 포기한 삼수생 '우연'이 화자가 되어 서술되는 소설이다. 나성 여관에는 돈밖에 모르는 어머니, 무기력하고 무능한 아버지,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먼 누나, 학생 운동을 하는 형과 함께 살고 있다. 가족들 외에도 9호실에 살고 있는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는 40대 노동자 찌르레기 아저씨,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며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손자 민구를 맡아 기르는 10호실의 노인, 나성 여관의 부엌일을 맡아하고 있는 뽕짝 아줌마가 나성 여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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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가족과 나성 여관 투숙객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참하고 불행한 듯 보인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든 한 줄기 빛이라도 발견하고 싶은 갈구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회환과 상처와 절망마저도 양귀자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활달하고 서슴 없는 문체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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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의지하고 사랑하던 누나가 몇 줄의 메모만 남겨 놓고 집을 나간 뒤 허탈한 심정을 표현한 아래의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헉!' 하는 탄식을 자아냈다. "모두 내가 몸을 기댈까 봐 미리 뾰족한 바늘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니, 어떻게 이토록 적확한 표현을 할 수가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적막했다. 집에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어 쓸쓸하기만 했다. 잠시라도 마음을 의지할 대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모두 내가 몸을 기댈까 봐 미리 뾰족한 바늘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78쪽)
 
우리 역시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이 어떤 의미였는지 깊이 생각하곤 한다. 찌르레기 아저씨가 우연에게 "네가 누나를 사랑한 것은 곧 너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겠지. 우리가 모두 그렇다. 너는 사랑을 준 만큼 사랑 받고 싶었겠지만 인간 정신의 무게는 각각 다르다"(196쪽)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고집에서 깨어나라고 조언한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비슷한 무게의 보상을 바라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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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거칠고 무심하고 독선적인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는 아버지조차도 자식에 대한 마음의 깊이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행간을 통해 뚜렷하게 감각하며 여러 번 숙연해졌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며 집을 나간 딸, 학생 운동을 하다가 결국 살인미수로 옥에 갇히게 된 아들을 생각하며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약해지는 '우연' 부모의 모습을 보며 부모가 가슴에 품고 있는 동굴의 깊이는 감히 누구도 섣불리 추측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상심이나 애통함에 비하면 적어도 내 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라는 존재가 가슴속에 얼마나 깊은 동굴을 지니고 있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억세고 질길 뿐 감정 이입에는 철저하게 무능하다 여겼던 어머니는 봄을 탄다는 구실로 딸에 대한 혼란을 숨긴 채 눈에 띄게 약해졌다(190쪽)
 
소설의 말미에 오면, 도시 재개발로 허물어질 예정인 나성 여관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겨우겨우 삶을 지탱했던 사람들에게 나성 여관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나성 여관이라는 공간이 결코 불행의 근거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현재에도 나성 여관처럼 낡은 방 안에서 작은 희망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나성 여관'이라는 공간은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나성 여관은 허물어지지만 그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누나나 형, 그리고 내가 나성 여관에 품고 있는 사람을. 그것은 때로 누추했고 더러는 끔찍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오밀조밀했고 아늑했었다. 우리들의 사랑 속에 담긴 분노와 증오와 슬픔 없이 어찌 이처럼 질긴 애정의 끈을 묶어낼 수 있었으리.(571쪽)
 
희망과 절망의 절묘한 교차
 
소설을 읽는 내내 심장이 아팠다. 별거 아닌 것처럼 써 내려간 듯 보이는 문장들이 가슴에 와서 콕콕 박혔다. 반면에 짠 내가 나는 듯하다가 이내 설탕물을 들이킨 것 같이 달콤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물들 한 명 한 명에게 연민과 애정이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해졌다가 부풀어 오르곤 했다. 희망과 절망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짜인 씨줄 날줄을 따라가다가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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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층위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옳을지 고민하게 했고 나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보게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내가 추구해야 할 바른 삶은 무엇일지, 혹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로를 변경해야 하지 않을지, 내가 저지른 혹은 저지르게 될 실수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사유하며 무수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쨌든 결국에는 희망이 보이는 쪽으로 향해야 할 텐데,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또 끊임없이 고민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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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보내며, <희망>이라는 잘 짜인 소설을 통해 내가 바라는 미래는 과연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며 새해를 맞이해도 좋을 것 같다. 삶을 지탱해 나갈 마음가짐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모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알겠니?(544쪽)
 
소설 속 주인공 우연은 "감정은 와글 와글 들끓어도 절제하여 내놓는 문장은 차갑고 건조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의 첫 번째 신조였다.(441쪽)"라고 말했는데, 언어의 마술사 양귀자 작가의 글이 바로 이와 같다. 우리가 모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양귀자 작가의 글은 격조 있고 품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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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작가의 책을 단 두 권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모순'과 '희망'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희망>은 머리로 베고 자도 될 정도로 두꺼운 벽돌 책이니까 포기하지 않을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2025년이 가기 전에 양귀자 작가가 처음으로 펴낸 장편소설 <희망>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올해 100권 이상의 소설을 읽은, '소설 덕후'가 자신 있게 추천하니 한 번 믿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