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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 구병모

2025-10-27조회 24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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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통해 타인을 읽다
구병모 작가의 <절창>을 읽고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작가 구병모가 장편소설 <절창>을 들고 나타났다. 한계 없는 사유의 스펙트럼을 증명해 오고 있는 구병모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기대감을 또 얼마나 충족시킬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소설의 제목인 '절창切創'은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상처를 뜻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암시 덕분에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독자들은 단순히 스릴러라고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한 러브스토리를 접한 것 같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시 첫 장을 펼치게 만드는 소설" "아름답고 잔혹하며 중독적인 소설" "서로를 향한 이해의 환상 속에서, 인간 존재의 고립과 연결을 예리하게 해부한 소설" " 만연하되 진부하지 않고, 건조하되 차갑지 않은, 예리하게 조각된 문장들의 향연"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공포스러운 폭력의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입주 독서 교사 면접을 보기 위해 저택에 도착한 한 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 한 남자가 지속적 폭력을 당하고 있는 잔인한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무심한 듯 다가와 죽어가는 한 남자의 상처에 손을 올린 후 그의 마음을 읽어내는 한 여성을 마주하게 된다.

보육원에서 자란 한 소녀는 어느 날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의 생각을 말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 능력을 어렴풋이 자각만 하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문오언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저택에 감금되어 오언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신의 능력을 오언이 필요로 하는 불법적인 곳에 사용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마음을 읽으라는 오언의 강요 속에 그를 증오하면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키워가게 된다. 오언은 그녀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설명하고 싶고 자신을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 그녀가 자신을 '읽어주기'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 모든 인간을 다 읽어주더라도 오언만은 절대로 읽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결연함에서, 반드시 읽어내고 싶지만 진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렵다는 공포와 더불어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다.

오언과 아가씨의 관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이 소설의 화자인 입주 교사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이야기가 진실일지 추측하게 하고,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의 내면에서 부유하는 선과 악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유도한다. 화자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게 하는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소설의 전반적인 기조는 '읽기'라는 것은 오독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에 온전히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흘러간다.'관계'라는 것은 타인을 읽는 것에서 출발하며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처 없는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에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읽어내고자 하는 마음, 상대에게 어떠한 왜곡도 없이 읽히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 소설을 잔혹한 스릴러이면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한 명의 사람을 한 권의 책 대하듯 다각도로 읽어야 인생이라는 이름의 위기를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 거란다. 모면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감당이라고. 통과는 해야 한다는 걸 알아두렴.(301쪽)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작가의 생각에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삶'이라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에 수없이 베이고 고통받고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견디고 감당하고 통과해 내야 넘어갈 수 있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다'라는 문장이, 오언과 아가씨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은유임을 차치하고서라도 모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매우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344쪽)
 
작가는 끝끝내 독자들에게 친절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도 독자들은 오언의 진짜 마음을 읽어 내지 못한다. 오언은 분명히 나쁜 사람이지만, 어쩌면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들이 치명적인 오독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기필코 독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결코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한 텍스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고, 그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통해 깊은 성찰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만연체와 은유로 가득한 문체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들로 독자들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작가의 압도적인 필력에 숨 막힐 정도로 몰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는, 중간중간 인용되는 고전문학의 명문장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배가시키기에 충분하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축조였다고 생각한다.

소설 <절창>은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읽어내고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점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울림을 주고 누구도 답을 알아낸 적 없는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병모 작가의 전작 <파과>를 이야기하며 이 소설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언급한다.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여성 서사를 탄생시킨 소설이라고 극찬을 받고 있는 소설 <파과>를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 <파과>는 <절창>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