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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 샐리 페이지

2025-04-30조회 3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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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샐리 페이지 작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를 읽고


 
 
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2025년 3월 출간)는 유명인들의 추천사 없이 오직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다. 영국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50만 부 이상 판매된 책이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같은 해 25만 부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 책의 인기가 짐작이 된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샐리 페이지 작가의 이력이 굉장히 독특하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후 광고업계에서 일했으며, 플로리스트 과정을 공부하다 꽃집을 열기도 했다. 또한 만년필 애호가로서 급기야는 만년필 브랜드 플룸스(Plooms)를 설립해 원하는 펜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이 소설이 가진 어떤 매력이 이토록 독자들을 열광케 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고객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케임브리지의 독보적인 청소 도우미 재니스의 치유와 성장을 그린 소설이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작가가 1년 동안 실제 삶에서 수집한 실화에 기반한다고 한다. 재니스가 청소 도우미로 일하는 곳의 고용주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린 소설로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니스도 그런 사람인데, 그녀는 이야기 수집가가 되었다. - 9쪽
 
소설은 이 질문과 의문과 아이러니 속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살면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어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삶은 왜 이 모양이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회의를 느끼고 실의에 빠질 때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재니스는 무능한 남편 대신 청소 도우미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남편으로부터 무시와 경멸을 받는다. 맘 같아선 어떻게든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삼킨다. 청소 도우미로서는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캐임브리지 최고의 청소 도우미라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재니스가 진짜 원하는 것은 청소 도우미로서의 전문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재니스는 타인의 인생을 수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선택할 수 없고 하나의 이야기로 정해져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차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고 인생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까?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반문하던 재니스는 마침내 용기 내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와 모양으로 그려나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처음에 재니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삶을 바꿔가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니스는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지, 절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괴팍한 B부인, 쌍욕을 날릴 줄 아는 그래그래 부인, 지리 선생을 닮은 버스 운전기사 애덤과의 인연이 재니스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결국, 진짜 변화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순간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와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과 당당히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 말이다. 재니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소리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친구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주로 '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내가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인가?'라는 혼란과 자괴감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쏟아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표현하는데 서툴러 내 안에 생각과 감정을 가두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물론,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대변해 주고 함께 소리쳐 주는 진짜 어른이 곁에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B 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또한 모든 것이 변했다. 좋은 쪽으로. - 371쪽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살면서 좋았던 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화자의 나쁜 기억을 내보내는 기능,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는 걸까? - 391쪽
 
세상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책을 덮으며 '과연 내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본다. 재니스의 여정을 따라가 보며 깨달은 것처럼, 새로운 인생의 기회는 아직 꺼내지 못한 내 이야기 속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아름다운 이야기, 읽는 모든 순간이 좋았다' '겉모습 너머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 완벽하지 않은 어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꼭 필요한 책' 등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님을 많은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