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 / 김지은
2025-04-26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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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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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담은 가장 성공적인 인터뷰집
김지은 인터뷰집 <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를 읽고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리고 실패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실패를 마주한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패 앞에 무릎 꿇고 포기하는 사람과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 '나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질문을 던져본다.
많은 책들에서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을 주로 이야기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습관을 가졌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해야 한다.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지 않으면 패배자인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실패 없는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실패의 경험을 공론화하는 것을 터부시 해온 경향이 있다.
24년 차 기자이면서 인터뷰어인 김지은 작가는 자신을 '실패한 기자'라고 소개한다. 좋은 기사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꿈이 결국 실패했음을 깨닫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듣고 이야기하며 알게 된다.
"가장 큰 실패는 실패하지 않는 삶이라는걸,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실패해 왔다는걸."
그리고 실패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열두 명의 인터뷰이를 만나기 시작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실패의 경험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한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에 그들의 진솔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에는 배우 김혜수, 발레리노 이원국,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부터 성매매 당사자 진, 마약중독자에서 회복자가 된 한부식까지 실패를 껴안고 우주로 나아간 사람들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다.
개인적인 실패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와 얽힌 다양한 층위의 실패를 새롭게 조명해 주는 인터뷰집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빛나는 용기와 선택으로 가득한 갖가지 실패 이력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네 개의 멀티 유니버스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우주에서는 '준비한 적 없는 삶', 두 번째 우주에서는 '끝장? 아니 성장', 세 번째 우주에서는 '함께'라는 행성에서, 네 번째 우주에서는 '실패를 껴안고 나아간 이들의 우주'를 다루고 있다. 특히 첫 번째 우주에서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의 '로봇도 넘어지면서 배운다'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넘어졌기 때문에 안 넘어질 수 있게 된 거거든요."
"로봇은 넘어질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거든요. 경험이 많아야 똑똑해지는 거죠. 사람도 그렇잖아요? 로봇을 만들면서 인간에 대해 새삼 다시 배우죠." (51쪽)
데니스 홍의 말에 의하면, 심지어 로봇도 그럴지인데 사람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도전하고 막 실패하라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도전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 보고 성공 가능성은 적고 실패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한 경우 파장이 큰일이라면 도전해 보라(53쪽)고 한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도전해 보지 않았다는 거니까 오히려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서 데니스 홍은 '현명한 실패'와 '무모한 실패'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38년째 탑 배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김혜수의 인터뷰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로부터 "늘 힘을 주는 선배이자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라는 평을 듣고 있는 배우 김혜수는 이제 존재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된 듯 보인다.
'김혜수'라는 상징에 이르기까지 그를 지탱해온 연료는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그건 바로 최선을 갱신 또 갱신하면서 내적 재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태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수 하림은 "실패란 그냥 실패일 뿐이다, 실패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실패하니까. 실패했으면 그 상자는 닫고 다음 준비된 상자를 열어야 하죠. 대신 저는 늘 최악을 생각하고 다른 상자들을 준비해 둬요"(157쪽)라고 말했다. 이전의 실패에 발목이 잡혀 움츠러들 필요 없고 차선책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 된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희망의 언어였다.
웹툰 작가 홍인혜는 '실패 다음에 와야 할 문장부호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쉼표를 찍을 수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225쪽)고 말한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인생의 여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실패 뒤의 태도와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나는 실패 다음에 무엇을 썼는지, 물음표였는지 마침표였는지 말줄임표였는지 아니면 스페이스바(빈칸)였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카이스트의 '실패 학자'라 불리는 안혜정 교수의 사례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인터뷰였다. 2018년 정부의 '실패 박람회'에 참여해 실패를 주제로 연구를 했고 그걸 계기로 실패에 관심이 생겨 '시행착오 연구소'란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까지 해둔 실패를 연구하는 전문학자 안혜정의 존재는 이 책의 기획에 있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카이스트 실패 연구소 연구원으로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패 주간'을 지정해 망한 과제 자랑하기, 실패 에세이 공모전, 실패감을 떠올리는 일상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감정을 얘기하고 나누는 포토 보이스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톱클래스에 속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카이스트 안에서 실패의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예로 들며 실패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되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그의 소신에 공감할 수 있었다.
김지은 인터뷰어가 열두 명의 인터뷰이에게 마지막에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자신만의 언어로 실패를 정의해 본다면?"과 "실패의 경험으로 얻은 '삶의 도'는 무엇인가요?"이다.
각자의 삶의 방향성과 경험에 따라 다양한 실패를 정의하고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당당히 표현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살면서 내가 경험했던 실패의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정의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온 독자들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 의미를 정확히 간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배우 김혜수는 말했다. '좋은 인터뷰에는 공감과 위로, 깊은 연대감과 영혼의 구원이 담겨있다'라고. 크리에이터 김라라는' 김지은 인터뷰어는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섬세한 귀로 들어줬으며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해 줬다'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좋은 인터뷰어와, 자신의 인생을 잘 담아 줄 거라 확신하며 마음을 열고 인터뷰에 응했던 좋은 인터뷰이와의 완벽한 조화가 만들어낸 <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는 실패를 담은 가장 성공적인 인터뷰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이 책을 '실패를 키워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엮어보는 시도이면서 실패를 테마로 한 실패 이력서'(263쪽)'라고 정의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반전시키고, 실패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실패를 했다는 건 어쨌든 무언가를 '했다'라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오랫동안 계획하고 꿈꾸던 일에 무조건 도전해보려고 한다. 설사 나의 실패 이력서를 한 페이지 더 채운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삶의 궤적을, 나의 우주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