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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 정지아

2026-09-14조회 28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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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정지아 작가의 <찌니주의보>를 읽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정지아 작가가 4년 만에 『찌니주의보』로 돌아왔다. 작가의 신작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고, 어느새 탐닉하듯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찌니’는 수평마을 어르신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성진과 혜진을 부르는 애칭이다. 성진과 혜진은 동성 연인이다.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평화롭던 수평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평균 연령 70대인 수평마을 어르신들은 성진과 혜진에게 대놓고 ‘레지’니 ‘레즈’니 하며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낯뜨거운 이야기까지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직접 농사지은 음식들을 나누어 주던 인심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치 병이라도 옮길 것처럼 두 사람을 멀리한다.
​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이웃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성진과 혜진은 다시 숨을 쉰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싫은 부분도 있고,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함께 밥 한 끼를 나누고 손을 내밀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어 충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찌니주의보』의 목차만 보아도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수평마을 사람들은 매우 무례하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토록 다층적인 인물들을 촘촘하게 직조해 낸 정지아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대놓고 흉보고 욕하면서도 따끈한 호박전을 부쳐다 주고, 시래깃국과 가지나물을 대문 앞에 놓고 가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성소수자와 이주 여성, 고령화라는 어쩌면 조금은 불편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이야기의 저변에 깔아두고도 이토록 따뜻하고 유쾌하며 밝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것이야말로 정지아 작가만의 힘이 아닐까 싶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툭툭 주고받는 구수한 사투리가 어찌나 정겹고 재미있는지. 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
정지아 작가는 독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문제를 깊숙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그저 밥 한술을 권한다. 그저 옆자리에 사람을 앉힌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밥상을 차려 준다. 그래서 독자들은 웃다가 울다가, 어느 순간 뭉클해진다.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먼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 (225쪽)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이해해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걸크러시함에 폭소가 터진다. 소설은 이처럼 내내 통쾌하고 유쾌하며, 때로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를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면서, 결국 우리를 웃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역시, 정지아 작가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