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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 샬럿 버터필드

2025-08-05조회 13

작성자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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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방향타를 재설정하게 하는 소설
샬럿 버터필드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을 읽고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2025년 5월 출간) 책의 표지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호텔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주변에 편지 몇 통이 흩어져 있고 와인 병도 보인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또한 영국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가 극찬한 소설이기에 기대감은 더욱 상승했다.
 
소설 속 주인공 넬은 열아홉 살 때 점쟁이 맨디로부터 19년 뒤인 38세에 죽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당시 넬의 남자친구였던 그렉에게는 100세 넘어서까지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쟁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우연인지, 사고인지, 예언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음 달에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던 친구 소피가 그날 정말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넬은 점쟁이의 말을 믿고 19년간 죽음을 준비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19년 뒤로 세팅해놓고 살아간다. 평범함을 거부한 채,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을 찾아다니며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 그리고 죽음의 날을 일주일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전부 기부하거나 중고마켓에 팔고, 휴대폰과 통장은 해지하고, SNS까지 몽땅 탈퇴하여 자신에 관한 어떤 흔적도 남겨 놓지 않는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넬이 남긴 건 부모님, 언니, 옛 남자친구 그렉, 그리고 침대를 팔고 사다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 톰에게 보낸 편지뿐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초호화 호텔에 투숙해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던 넬, 그러나 결국 넬은 죽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늘'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의 장소로 정했던 호텔을 빠져나오면서 우연히 옛 연인 그렉을 만나게 되고, 그렉의 도움으로 삶을 다시 리셋하지만 그렉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번 우연이 겹쳤던 톰과의 인연은 계속되고 깊어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나의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넬처럼 지구를 떠돌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가며 살 수 있었을까? 죽음에 대한 예언이 없었다면 '하거나 하지 않았을 일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넬에게 인생은 너무 짧아서 머뭇거리면 진심을 말할 시간도, 행복을 누릴 시간도, 멋진 경험을 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그렉에게는 인생이 짧지 않았으니 달랐을 것이다. 지금 당장 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앞으로 시간이 창창하게 많으니까. (80쪽)
 
넬에게 19년이라는 시간은 머뭇거림 조차 아까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삶을 즐기느라 놓쳤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과 보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충격을 완화시킨다는 이유로, 일부러 가족을 멀리했다. 20년간 지구를 떠돌며 넬이 배운 것이 있다면 '모두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73쪽) 하지만 가족에게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다른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시간을 좀 더 할애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넬은 깨닫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로 새로운 내일을 맞이했지만 어쩌면 제대로 다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단단하게 재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여기 있는 지금이 특별한 거라고, 가진 것으로 행복해지자'(323쪽)고 마음먹는다.

넬의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게 된다.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음 주 혹은 내년에 죽는다면 과연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삶의 방향성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삶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다른 계획이 늘 있을 텐데, 과연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좋은 선택이 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듯,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라도 때로는 좋은 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 유연한 마음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인생이란 무조건 이쪽은 좋고 반대쪽은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중간 지대를 거쳐 지나가야 통과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어. 끔찍한 상황에서도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거야.
우주가 베푸는.... (258쪽)
 
이 소설을 읽다가 유난히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그저 평범한 안부 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차 타면 금방 가니까",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찡하고 뭉클한 감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자식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담백한 어조로 너무나 명확히 전달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리적 거리는 중요하지 않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사랑한다, 넬. 언제든 엄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렴. 기차 타면 금방 가니까.(311쪽)
 
우연히 만나 자신의 버스비를 대신 내주었던 주노 할머니와의 인연이 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실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언제 어떻게 다시 연결될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고, 성패가 뒤집힐 수 있고, 행불행이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내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늘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약속해.(365쪽)
 
자신에게 남은 시간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고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하는 책들은 흔히 접할 수 있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삶의 종착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질문과 답을 반복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너무 거창한 것들을 이루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죽음을 완성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기발한 설정과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배치로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을 읽으며 인생의 방향타를 재설정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