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양귀자
2025-04-20조회 11
우리들의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소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고 |
1998년 초판 발행되었던 양귀자 작가의 장편 소설 <모순>을 2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세련된 양장본으로 개정되어 나오면서 독자들은 진정한 인생 책으로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소장하게 된 <모순>은 2판 166쇄의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열 번도 넘게 읽었다고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저함 없이 인생 책으로 꼽기도 한다. 독자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소설임은 분명하다. 20년 만에 재독을 하면서, 이 소설의 내용을 거짓말처럼 다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페이지, 한 문장씩 새롭게 마음에 다시 담으면서 소설 <모순>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 읽히고 또 읽히고 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양귀자 소설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순' 이외의 다른 제목은 붙일 수 없는 소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그리고 그들의 삶과 우리 삶을 빗대어 보면서 이 소설은 '모순' 이외에 다른 제목은 붙일 수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판 발행 이후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상황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들이 뼛속까지 공감이 되어서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 딱 한 권만 골라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단 일초의 고민도 없이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라고 말할 것 같다. 소설은 주인공 안진진의 시선을 통해 전개된다. 안진진은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었다.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었다. 그런 안진진에게는 똑같이 닮은 어머니와 이모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다른 아버지와 이모부, 태생부터 다른 삶을 살았던 동생과 사촌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같은 집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며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은 마치 둘로 나누어진 한 사람인 양 보였다. 도저히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사람. 어머니와 이모는 결혼과 동시에 비로소 두 사람으로 나뉘었다. 두 사람으로 나뉘자마자 이들의 삶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세상의 행복이란 행복은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대신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소유하는 것으로 신에게 약속이나 받았듯이 그렇게 달라졌다. 안타깝게도 나는 불행을 짊어진 쪽으로 편입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19쪽) 이 책을 나의 인생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안진진의 어머니처럼 나 역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과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냈을 경우 특히 더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소설 속 어머니와 이모의 삶은 '행과 불행, 부와 가난, 평온과 전쟁, 매일 변화 없는 똑같은 삶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숨 가쁜 일상'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이, 함께 걷던 중 만난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도록 갈라 놓았다. 소설 속 인물처럼 극단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나와 언니의 삶도 '결혼과 비혼'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SNS를 통해 같은 시간을 수시로 공유하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생활권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인 차이와 거리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제약을 주고 있다. 물론 언니와 나는 각자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의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면에서는 즉시성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행복과 불행의 정의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안진진의 어머니는 불행의 대표주자, 이모는 행복의 표본인 것처럼 보인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무능하다 못해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과 속 썩이는 자식들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반면에 이모의 삶은 가정에 충실한 남편, 경제적 풍요, 공부 잘하는 자식들로 인해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완벽해 보인다. 이모의 독서는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진 시와 소설의 문학적 향유였지만, 어머니의 독서는 곤경에 처할 때마다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읽어내야 하는 치열한 삶의 과정이었다. 이모는 안진진 가족들에게 부채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듯이(133쪽) 누군가의 호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고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의 계산법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제각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에는 정해진 규칙도 원칙도 없다. 또한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21쪽) 한다. 이것 또한 삶의 모순이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127쪽) 인생이란 때때로 불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것 안진진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이라 확신했던 사람의 손을 놓아버리고 결국 자신의 안위와 안정을 택했던 안진진의 최종 선택, 사실 매우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 너무나 현실적인 선택을 했기에 결코 비난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선택했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것을 구하려고 한 선택이기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173쪽)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SNS를 보다 보면 행복의 총량을 다 채운 듯한 모습으로 삶을 과시하고 전시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초호화 해외여행, 오성급 호텔에서의 식사, 마켓에서 물건 고르듯 명품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과연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할까? 가끔은, 어쩌면 삶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 연막을 치는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왜냐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를 편집하고 왜곡하면서 진짜 '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란 이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삶의 어떤 거슬림도 없이 평온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누군가의 삶을 섣불리 판단하고 마음대로 규정지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무덤처럼 평온한 삶이야말로 누군가를 스스로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결핍이라고는 없는 지리멸렬한 삶'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고,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283쪽) 삶은 모순 덩어리 가장 불행할 것이라고 여겼던 안진진의 어머니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집 밖을 떠돌다 중풍과 치매에 걸려 돌아온 남편을 수발하면서도,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면서도, 살갑지도 않고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딸 때문에 하루하루 복닥거릴지라도 어머니는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지리멸렬한 삶보다 전쟁 같은 삶이 무조건 더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각양 각색으로 피어날 때 삶은 계속될 수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젠 완전히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게 하고 쉴 새 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면화를 갈 때마다 도무지 철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도 어머니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도왔다. 부쩍 말수가 줄고 홀로 처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나, 안진진의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준다.(293쪽)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늘 옳은 선택만을 할 수는 없다.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명확히 성과가 보이는 일이지만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삶은 늘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우리들의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편집되고 가공되고 각색된 삶일지라도 어느 지점에서는 모두가 다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 누구도 '모순'이라는 단어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삶의 진실을 명징하면서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읽고 또 읽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