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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만난 사람, 일루미셔니스트 이은결

2020-11-04조회 190

작성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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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명 :당신에게 권하는 인문학

 내가만난 사람, 일루미셔니스트 이은결

                                            2020.11.3.이천시립마장도서관

손바닥 안에서 모든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주술이나 마법을 고스란히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TV에서 보던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이제 영영 추억속의 한 장면 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식어 조금 빛바랜 듯한 ‘마술’ 세계에서 이은결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일루셔니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행보는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깊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큰 키 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웃음의 그가 등장하자 작은 공간이 일렁인다.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12.9인치의 아이패드를 들고 등장한 그의 화면에 사과가 보인다. 그는 네 가지 종류의 사과에 대해 몸으로 이야기 한다. 스마트 기술이 함께 하는 마술이다. 그는 오늘 ‘의심하라’라는 주제를 들고 나왔다. 의심과 사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오늘의 화두인 ‘사과’에 대한 그의 퍼포먼스가 시작부터 청중을 압도한다. 역시 이은결이다.

그가 말한 첫 번째 사과는 ‘에덴의 사과’다. 그것은 먹으면 안 되었던 사과는 ‘금기’를 상징한다. 우리는 해서는 안 되고 하지 말아야할 것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법과 규범의 테두리 뿐 아니라 스스로를 어떤 테두리 안에서 규정해 놓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역시도 마술을 배우는 동안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안티 버킷리스트’라고 명명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나씩 해 보면서 왜 그것이 나쁜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론, 책임에 대한 울타리 안에서다. 그렇게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 ‘할 수도 있는 일’이 된다. 금기에 대한 의심으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순간이다.

그가 소개한 두 번째 사과는 정물화로 유명한 ‘폴 세잔의 사과’다. 회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던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담을 수 있게 했다. 소실점을 정하고 그 시점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의심, 곧 기존의 ‘페러다임’에 대한 의심을 말한다. 세잔이 소실점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의심이 입체파의 등장에 큰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지 않는 ‘페러다임을 의심하라’는 말이다. 그는 2016년 아이티 지진 때 그곳이 고아원을 방문했던 일화를 꺼냈다. “왜 자꾸 손가락을 튕기냐?”는 한 아이의 질문이 자기가 갖고 있는 마술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일화는 우리 일상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사고의 당연함’들을 의심해 보라는 메시지였다. 그 일 이후, 그에게 전부였던 마술은 자신이 전달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사과를 소개하기 전, 그가 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 그러고 나서 빈 유리컵을 떨어뜨리자 깨질 것을 예상한 청중들이 소리를 지르다. 하지만 컵은 깨지지 않고 가볍게 튀어 오른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투명한 컵은 유리가 아니었다. 그는 ‘뉴턴의 사과’를 말한다. 나무에서 사과를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뉴턴에게 만큼은 의심스러운 사과였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심, 그것이 그가 말하는 세 번째 이야기다. 손안의 스마트 폰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그 안의 어플들을 이용한다. 유튜브에서 그동안의 이용 정보를 바탕으로 내 입맛에 맞게 추천된 영상을 클릭하고 재미를 주는 다양한 어플로 여유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당연한 것들이 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스마트 폰의 출현으로 정보 노출이 빈번한 사회에서 우리가 더 의심해야하는 이유다. 그래서 그는 관심 없는 분야, 낯선 분야, 전혀 다른 정보에 관한 접촉을 시도하라고 제안한다. AI가 세팅해 놓은 그곳에서 나를 빼 내어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는 순간 창의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은 스티브 잡스의 걸작, ‘애플의 사과’다. 전 세계를 누비는 아이폰을 개발하기까지 그가 했던 숱한 노력과 실패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은결은 그것에서 우리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안 될 거야’ 또는 ‘여기까지 밖에’ 라는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의심’을 강조한다. 그 역시도 밤업소의 스탠딩 무대에서 마술쇼를 하던 때가 있었다. 마술대회 같은 건 자신한테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결국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쇼를 본 관계자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것이 자신이 만든 한계를 뚫는 계기가 되었다는 그는, 각자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한계를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 마술쇼를 보고나면 계절만큼이나 갑자기 싸늘해진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시작도 잠시,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마술과 강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훤칠한 외모만큼이나 능숙한 강연자의 손놀림에 매료된다. 결코 가볍지 않았던 ‘의심하라’는 주제는 네 가지 다른 사과의 형태로 강연자들의 마음에 새겨졌다. 그의 의심은 마술사에서 일루셔니스트로 거듭나는 계기였고 그것은 곧 창의력의 산실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대상이다. 지난 수 백 년 동안의 변화보다 최근 10년 사이의 변화가 훨씬 급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은결의 창의력을 일깨우기 위한 ‘의심’은 그 의미가 크다.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시선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신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자세에 대한 ‘사과이론’은 그를 일루셔니스트를 넘어 ‘인무니스트’로 부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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